작성일
2018.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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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해하고 더 나누는 삶

전송미 ㈜딜라이트디엔씨 대표(영문 83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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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요한 것은 다시 채워진다’는 믿음
“이화에 대해 늘 고마운 마음이 있었어요.” 이대부초, 이대부중, 이화여대까지 학창시절의 4분의 3을 이화에서 보냈고, 여성사업가로 성공할 수 있었던 바탕에도 이화 안에서 만들어준 많은 인연들의 도움이 있었다.

 

전송미 ㈜딜라이트디엔씨 대표(영문 83졸)가 2018년 1월, 모교 이화를 방문해 ‘이화미래전략기금’ 1억원을 기부했다. “사실 개인적으로 작은 돈은 아니었어요. 그래도 이화에 기여하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고, 필요한 것은 늘 채워진다는 믿음이 있었기에 필요하면 더 벌면 되지 하는 생각으로 약간 무리를 했어요.” 전송미 대표는 이번 기부에 대해 이렇게 솔직한 마음을 보였다.


영문학도에서 종합건설회사 대표로
전송미 대표가 경영하는 ㈜딜라이트디엔씨는 종합건설회사다. 유학을 다녀와서 인테리어 설계분야에서 일하다 40대에 독립해 인테리어 스튜디오를 오픈했다. 의욕적으로 일을 하다 보니 큰 프로젝트를 수주하게 되었고, 건설, 소방, 설비, 전기, 통신 등 하나씩 면허와 조건을 갖추다 보니 어느새 종합건설회사가 되어 있었다.


사실 전송미 대표는 이화에서 영어영문학을 전공했다. 그도 그럴 것이 어머니는 영문과 은퇴교수이신 나영균 교수, 언니는 현직 영어영문학부 전수용 교수다. 미국에 사는 큰언니도 이대 영문과 출신. 네 모녀가 이대 영문과 출신인데, 그녀는 졸업 후 떠난 미국 유학길에서 ‘인테리어 디자인’으로 과감하게 전공을 바꿨다. 그런데 다시 대학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그녀는 여전히 인문학을 선택할 것 같단다. “디자인은 사람들의 필요를 파악하고, 그것을 구현하는 방법을 제시해야 한다는 점에서 순수미술과 많은 차이가 있어요.” 그녀의 디자인 철학에는 ‘사람 중심’이라는 깊은 전제가 있다. 아마도 4년간 인문학도로서의 대학생활이 그녀에게 미친 영향이 아닐까.


서로 이해하고, 더불어 사는 세상을 위해
전송미 대표가 학교에 다닐 때 5·18이 있었고, 휴교를 많이 했다. 우리가 외친다고 세상이 달라질까 회의적인 생각에 학생운동과는 담을 쌓았다. 어머니가 엄격하셔서 미팅 금지, 동아리 금지, 6시 통금의 규율 가운데서도 몰래 미팅도 하고 연애도 하면서 평범한 대학생활을 했다. 그런데 졸업하고 보니 스스로가 ‘자신감’ 있는 여성이 됐다는 사실을 발견했다고. “이화가 4년간 드러내놓고 가르친 것은 아니었지만,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여기고 자신감 있게 사는 법을 스며들 듯 배우게 된 것 같아요.”


좋은 학교에서 좋은 교육을 받았다는 생각은 자연스레 자신이 받은 것을 사회에 돌려줘야 한다는 생각으로 발전했다. “어떤 위치에 있든, 나만 잘되기 위해 주변을 밟는 편협한 이기주의를 가장 경계했으면 좋겠어요.” 조금 더 남을 이해하려 해보고, 자기의 욕심을 조금만 더 버리고 더불어 사는 세상을 추구한다면 그래도 우리가 사는 세상이 나아지지 않을까 물으며 활짝 웃어 보였다.

 

 

글_강혜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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