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2021.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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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 발전의 씨앗을 뿌리다

최명숙 총동창회 前 고문(정외 57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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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동창회장으로서 모교를 위한 헌신과 봉사에 앞섰던 故 최명숙 고문이 ‘최명숙 장학금’으로 1억 원을 이화에 기부했다. 이화를 위하여 봉사하고 나누는 삶을 보낸 최 고문은 임종을 앞둔 중에도 이화를 위한 후원의 의지를 밝혔고, 이에 유족이 고인의 뜻을 받들어 장학금을 후원하여 주셨다.

 

새 시대에 새로운 길을 제시하다

 

이화는 자부심이자 보람이며. 모교를 위해 봉사하고 학교의 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다는 것은 참 기쁜 일이라던 故 최명숙 고문은 1957년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한 후 20만 명이 넘는 이화동창을 이끄는 총동창회장 (1999년~2003년)으로서, 후원자로서 늘 이화의 큰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고인이 1999년 총동창회장에 취임하던 당시 사회와 학교는 2000년이라는 새로운 세기의 시작에 대한 기대와 설렘, 앞날에 대한 각오와 포부로 가득하였다. 이러한 역사적 시기에 총동창회장에 취임한  최명숙 고문은 동창회 회칙과 조직을 재정비하고 시대적 변화에 부응하기 위해 기존 동창회의 사업을 계승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새로운 프로그램을 추가하여 튼실한 성과를 이루어냈다.
모교와 동창회의 발전은 분리할 수 없다는 신념 하에 더 많은 동창이 동창회에 적극 참여할 수 있도록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다. 해외 동창 참여 기회를 늘리기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전개하고 온라인 동창 포털 사이트인 ‘이화인 닷넷’을 개설하는 등 이화여자대학교 총동창회라는 거대 조직에 새 시대에 걸맞는 새 비전과 방향을 제시하는 큰 족적을 남겼다.

 

 이화 발전의 씨앗을 뿌리다

 

총동창회장으로 재임하던 시절 故 최명숙 고문이 가장 공을 들인 모교 지원 사업은 대강당 보수 사업이었다. 입학식과 졸업식, 개교기념일을 비롯한 학교의 중요한 행사가 거행되는 공간이며 채플의 추억을 담은 대강당은 이화의 상징과도 같은 건물이다. 특히, 고인은 대강당에서 졸업식을 한 첫 졸업생으로 대강당에 대한 추억이 많았다고 한다. 대강당의 신축을 지켜봤던 학생이 반세기만에 하는 보수공사에 총동창회장으로서 모금활동을 하게 된 것이다. ‘다른 동창들에게 도움을 요청해야 했기에 내가 먼저 성의껏 내게 되었다’던 최 고문은 총동창회의 모금활동을 이끌며 2000년대 초반 20여 억 원 모금이라는 큰 성과를 내며 새로운 세기를 맞이한 이화의 새 출발에 의미 있는 역할을 했다.

 

성공적인 모금으로 새롭게 태어난 대강당에 이화인이 다 같이 모여 성탄축하예배를 드린 순간이 매우 뿌듯했다던 故 최명숙 고문. 학교에 봉사할 수 있는 기회에 참여하다 보니 학교에 대한 애정도 자연스럽게 커졌다며, ‘우리 후배들도 처음에 학교에 대한 관심을 조금씩 갖기 시작하면 그 관심의 씨앗이 자라 나중에 크게 열매 맺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라던 고인의 말씀은 나눔과 봉사를 기쁨으로 생각했던 최 고문의 아름다웠던 삶의 태도를 잘 드러낸다.

 

고인은 총동창회장으로서의 봉사뿐만 아니라 후배를 위한 장학금으로 때로는 학교발전을 위해 매번 아낌없는 사랑의 손길을 내밀었다. 이화 발전의 매 순간마다 함께했던 고인은 후배들을 위한 장학금 지원에 열심이었다. 2001년 1억 원을 쾌척하여 ‘최명숙 장학금’을 조성하고 2009년 이화 후배인 손녀의 이름으로 ‘송미영 장학금’을 새로이 만들어 1억 5천만 원이 넘는 장학금을 후원하였다. 또한, 고인이 조성한 장학금 이외에도 학교에서 모금하는 각종 장학금 후원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여성인재양성에 힘을 보탰다.

 

이화가 발전하는 것은 후배들뿐만 아니라 졸업한지 수십 년이 지난 본인에게도 큰 힘과 활력소가 된다며 물심양면으로 이화를 뒷받침한 고인의 모교 사랑은 이화 발전의 씨앗을 심었고 이를 발판으로 이화는 새 천년을 맞이하여 도약하는 열매를 맺을 수 있었다. 故 최명숙 고문이 보여준 이화에 대한 깊은 사랑과 헌신은 이화에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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