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2019.12.11
조회수
2017

보자기로 엮는 인생수업

이성순 명예교수(섬유예술전공)
보자기로 엮는 인생수업 첨부 이미지

 

늦가을이 물든 이화교정에서 이성순 명예교수(섬유예술전공)를 만났다. 까만색 롱코트와 하얀 블라우스, 수공예 스카프로 멋을 낸 그녀. 70대 중반의 나이가 무색할 만큼 멋짐을 발산하고 있었다.

 

늘 멋지신데, 특별한 비결이 있으신가요?
첫째는 제게 어울리는 옷을 즐겨 입어서 그리 보이는 걸 거예요. 이 검정 코트는 제자가 선물해준 옷인데 30년도 넘은 아주 오래된 거죠. 그동안 몸이 불어서 여며지지도 않고 안쪽 솔이 헤질 정도로 낡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옷이라 오랫동안 즐겨 입고 있어요. 둘째는 유행을 따라가기보다 나다움을 찾고 나답게 입으려는 고집이 제 스타일을 만든 결과인데, 좋게 보아주시니 감사합니다.

 

우리나라 1세대 섬유예술가로 유명하신데.
어려서부터 바느질을 잘했어요. 다림질과 재봉에도 재주가 있었고요. 50년 넘게 해 왔으니까 섬유예술은 제 인생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제가 섬유를 택한 건 제 말을 가장 잘 듣는 게 섬유였기 때문이에요. 친근하기도 하구요. 그런데 제가 깜박 속았습니다.(웃음) 50년 해보니 느끼는 건 말을 잘 듣는 척하지만 실제로 무척 예민하고 다루기 어려운 것이 섬유더라고요. 세월이 더할수록 점점 더 어려워져요. 섬유예술 1세대로서 책임감도 느끼고요.

 

한국 보자기를 작품으로 승화시켜 전 세계에 알리신 걸로 알고 있어요.
처음에는 순수예술로서의 섬유예술을 했었어요. 그러다 2000년에 모교이기도 한 시카고예술대학에 연구년을 다녀올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문화적인 충격을 받았습니다. 세계 예술시장의 큰 변화의 흐름을 보고 한국에 돌아와서 선택한 것이 보자기였어요. 우리 보자기를 세계적으로 만들겠다고 결심한 거죠. 그때부터 제자들과 함께 보자기를 활용해 연구하고 만드는 작품 활동을 열심히 했습니다. 그런 노력 덕분인지 2010년 시카고예술대학에서 명예박사 학위까지 받게 됐습니다. 외국인으로는 두 번째, 아시아인으로는 처음이라고 하네요.


그러나 여전히 할 일이 남았습니다. 우리나라 10명의 보자기 작가들을 선정해 세계 속으로 나간다고 선언했는데 아직도 그 숙제를 못했으니까요. 이제 그 숙제를 마저 할 계획이예요.

 

 

 

왜 하필 보자기인가요?
제가 보자기작품으로 다루는 재료는 모시인데 모시의 특성은 투명함에 있어요. 저는 그 투명함이 참 좋아요. 작품이든 일상생활이든 또 사람에게도 투명에 진실이 있듯이 섬유의 본질을 가장 잘 표현 할 수 있은 재료라 생각합니다. 또 모시는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햇살을 가득 머금어서 참 따뜻해요. 흰 모시를 조각조각 붙여서 작품을 만드는 일이 우리 인생과도 닮았습니다. 서로 다른 일상의 파편이 모여 하나의 인생을 완성한다는 점이 매력적이지요. 그리고 보자기는 매우 유용한 소재예요. 제가 예술작품을 실생활에서 쓸 수 있는 작업을 하는 공예가이기에 실제로 전시했던 작품을 집에서 커튼이나 식탁의 러너로도 사용하고 있지요.

 


 

최근 이성순장학금 7천만 원을 후원하셨는데, 특별한 계기가 있으신지?
제가 2008년에 은퇴할 때 당시 퇴직금의 반인 3천만 원을 장학금으로 후원했었어요. 그런데 10년이 지나도록 좀 더 할 걸 하는 아쉬운 마음이 있는 거예요. 그러다 얼마 전에 제가 50년 살던 건물이 재개발되는 바람에 갑자기 생각지도 않았던 목돈이 생겼지 뭐예요. 아싸, 기회다 싶었죠.(웃음) 7천만 원을 보태 이성순장학금 1억 원을 완성했습니다. 해묵은 숙제를 마치고나니 어찌나 시원하던지...! 저의 인생 숙제를 흔쾌히 도와준 남편에게도 정말 감사합니다.

 

나에게 나눔이란?
매일매일 해야 하는 인생 숙제라고 생각해요. 저는 크리스천 집안에서 자라 어릴 때부터 부모님이 용돈 주시면 교회에서 헌금했어요. 그냥 당연한 일상 같은 거였죠. 헌금해본 사람은 알거예요. 내 손에 쥐고 있는 돈이 내 돈이 아니라는 것을요.  

 

 

후원자로서 보람을 느끼는 점이 있으시다면?
올해 처음 조형대 장학생의 편지를 받았어요. ‘매번 작품을 만들 때마다 재료비 대기가 힘들었는데 올해는 그런 걱정 없이 작품에 몰두할 수 있어 정말 좋다. 최고의 졸업 작품을 만들 수 있겠다’는 글을 읽고 정말 감동했어요. 사실 조형대 학생들은 등록금보다 재료비 걱정이 더 크거든요. 나의 작은 도움이 후배들에게 큰 힘이 된다는 사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보람을 느낍니다. 앞으로도 이화에서 배운 사랑과 감사를 후배들을 위해 다시 돌려주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이화인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은.
우리 이화의 졸업생들이 더 적극적이고 넓은 마음으로 세상을 보았으면 해요. 크리스천으로서 예수님이 어떻게 사셨나를 보고 그 길을 따라 살았으면 합니다. 바르고 당당하게, 그러나 교만하지 않게, 더불어 나누며 사는 이화인이 되기를 바랍니다.

 

 

 

글_김효정

 

첨부파일
첨부파일이(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