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2019.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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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19

아버지의 백년대계

전희영, 전희송(의학 87졸) 자매
아버지의 백년대계 첨부 이미지

 

흔히 교육은 백년대계라고 합니다. 1년 계획으로는 곡식을 심는 일만한 것이 없고, 10년 계획으로는 나무를 심는 일만한 것이 없으며, 평생 계획으로는 사람을 심는 일만한 것이 없다는 것이지요. 여기 교육을 통해 아버지의 백년대계가 이어지기를 바라는 두 딸이 있습니다. 아버지의 유산을 EGPP장학금으로 기탁한 전희영, 전희송(의학 87졸) 자매입니다. 

 

두 분이 EGPP전찬화장학금 각각 5천만원씩 총 1억원을 기부하셨는데, 그 계기가 궁금합니다.

 

전희영_아버지가 이화여대에서 1998년도에 은퇴하신 전찬화 심리학과 명예교수이세요. 작년 10월에 돌아가셨으니까 꼭 1년이 되었네요. 저희 자매에게 작은 유산을 남겨주셨는데, 어떻게 하면 아버지의 유산을 값지게 쓸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이화여대에 장학금을 후원하게 됐어요. 늘 이화를 사랑하고 후학 양성을 위해 애쓰셨던 아버지의 바람을 이화의 어딘가에 남기고 싶었거든요. 

 

 

EGPP장학금에 대해 알고 계셨나요?

 

전희송_아뇨. 전혀 몰랐어요. 아버지 성함을 넣어 그 뜻을 기릴 수 있는 장학금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마침 김혜숙 총장님께서 EGPP장학금을 후원하라고 권해주셨어요.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제3세계 여성인재를 키우는 전액 장학금 프로그램이라고 하더라고요.


전희영_아버지도 전쟁 직후 매우 어려운 시절에 미국 텍사스로 유학 가셨는데 다행히 학과 여교수님의 도움으로 장학금 받으면서 공부를 마칠 수 있었다고 하셨어요. 귀국하신 후에도 편지도 하고 우리들 옹알이도 녹음해서 보내시면서 인연을 이어오셨는데, 나중에 그 교수님이 돌아가실 때 아버지한테 유산을 남겨주실 정도로 각별하셨다고 해요. 생면부지의 미국 여교수님이 우리 아버지에게 배움의 기회를 주신 것처럼 아버지의 유산이 다시 제3세계 여성인재를 키우는 장학금으로 쓰이게 되어 매우 기쁘고 뜻깊게 생각합니다.

 

두 분 교육자의 정신적 유산이 3대에 걸쳐 이어지는 거네요?

 

전희영_의도하지는 않았지만 교육적 유산이 계속 이어지게 되다니 참 감동적이에요. 앞으로 아버지의 장학금을 받은 EGPP장학생도 쑥쑥 잘 성장해서 또 다른 누군가에게 교육의 기회를 전하는 사람이 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사람을 심고 키우는 교육의 대물림이야말로 아버지, 전찬화 교수님이 꿈꾸셨던 진정한 백년대계가 아닐까요?

 

전찬화 교수님은 어떤 아버지이셨나요?

 

전희송_천상 학자에 선비셨죠. 마르고 단호하고 그러면서도 참 부드러운 분이셨어요. 그 시절에는 남아선호가 강했을 때지만 아버지는 우리 두 딸만 낳고 세상 전부인 것처럼 아끼고 사랑해 주셨어요.

 

인터뷰에 앞서 전찬화 교수님에 관한 자료를 찾아보다가 재미있는 에피소트 하나를 알게 됐어요. 1952년 6.25 전쟁이 한창인 어느 날 부산의 이화여대 피란 교사에서 ‘이화 문학의 밤’이 열렸는데 전쟁의 시름을 잊으려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고 해요. 그 날 양명문 시인이 훗날 국민가곡이 된 자작시 ‘명태’를 낭송하고, 근처 서울대 임시 교사에 다니던 교육학과 동기 남학생 3명은 초대장이 없어서 천막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 몰래 ‘명태’를 들었다고 하는데요, 재미있는 건 나중에 그 남학생들이 모두 이화여대 교수가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전희영_하하! 저 그분들 모두 잘 알아요.(웃음) 황응연(교육심리학), 김재은(교육심리학) 교수님, 그리고 저희 아버지 이렇게 세 분 교수님이시죠? 이화와 인연이 되시려고 그렇게 몰래 청강하셨나보네요.(웃음) 아버지 절친 분들이시라 그분들 자녀하고도 무척 친해요. 같은 초등학교 다니며 언니 동생하는 사이고 친구 아버지들이시라 가족처럼 친하게 지냈어요.

 

 

두 분께 이화란?

 

전희영_어릴 때 이대 후문 쪽 봉원사 아랫집에 살면서 이화유치원과 이대부초를 다녔어요. 대학은 카톨릭 의대를 나왔지만 이화는 제게 고향처럼 푸근하고 동네 놀이터 같이 즐거운 곳이죠. 이화 안에서 우리 가족 모두가 행복했던 추억이 참 많아요.

 

전희송_저는 대학까지 이대 의과대학을 나와서 뼈 속까지 이화인이랍니다. 어릴 때 성탄이 가까울 무렵이면 집에서 총총 걸어 나와 대강당에서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를 봤던 기억이 생생해요. 꽃피는 봄이면 본관 앞에서 가족사진도 많이 찍고, 또 눈 오는 날이면 대강당 옆 비탈길에서 썰매도 많이 탔고요. 아버지가 평북 강계 출신이시라 눈을 참 좋아하셔서 눈이 내리는 날이면 이화 캠퍼스로 온 가족이 출동했었죠. 추억은 눈을 감지 않는다는 말이 있잖아요? 이화는 제게 늘 아버지와의 추억이 생생히 살아있는 곳이죠.

 

 

글_김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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