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을 닮은 사랑의 정원
정원은 주인 닮는다고 한다. 북악산과 인왕산 사이에 자리한 승해 동문(교육 57졸)의 청 운동 자택을 찾았을 때 먼저 눈길을 끄는 건 아담한 정원이다. 세월에 굽이진 소나무와 철따라 화사하게 핀 철쭉과 목단꽃, 걸어 들어가는 돌길을 따라 피어난 아기자기한 꽃들과 푸른 잔디 위에 앉아 노니는 두 마리의 작은 새 조각상까지. 소담하고 편안해 보이지만 안 보이는 곳까지 세심하게 가꿔진 정원이 따뜻하고 부지런한 주인의 품성을 그대로 닮았다. “제가 꽃과 나무를 정말 좋아해요. 이 집을 1964년에 짓고 들어왔으니까 어느새 50년이 지났네요. 예전에는 사람들을 자주 초대해서 정원에서 함께 놀곤 했는데 이제는 힘들어서 못해요. 자식들은 편 한 데로 이사 가라고 하지만 너무 정들어서 떠날 생각을 못하네요.” 집을 둘러싼 풍경처럼 홍 동문의 미소는 넉넉했다.
이화 동문 네자매
홍승해 동문은 LG창업주 구인회 회장의 차남 고 구자승 LG상사 전 사장의 부인이자 구본걸 LF대표의 모친이다. 유명한 재벌가의 며느리이지만, 실제 만난 그는 이웃집 할머니처럼 소탈했다. 본교에 신축기숙사건립기금으로 1억 원을 쾌척하고서도 “별로 한 것도 없고 할 말도 없다”며 극구 인터뷰를 사양했던 홍 동문. 어렵게 인터뷰를 하게 된 이유를 물었더니 ‘이화에 대한 감사함을 표현하고 싶어서’라고 했다. “남편 사별 이후 자식들 키우느라 정신 없었는데, 나이가 들면서 부쩍 옛날 생각이 나더라고요. 이화인으로 살아 온 것이 자랑스럽고, 훌륭한 친구들과 스승들을 만나게 해준 이화에 너무 감사해서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이화의 스승에게 배운 인내와 사랑, 나눔의 정신이 세상을 사 는 큰 디딤돌이 되어 주었다고 한다. 그래서 홍 동문은 인연이 닿는 곳마다 나눔을 실천하는 데도 열심이다.
홍 동문은 전쟁 중이었던 1953년 부산의 임시 천막교사에서 대학생활을 시작했다. “당시는 여자가 대학은 꿈도 못 꾸던 시절이었어요. 아버지가 완고하셔서 대학은 어림없고 시집이나 가야 한다고 하셨죠. 심지어 저희 큰아버지는 조카딸이 대학 가겠다고 하자 식음을 전 폐하실 정도였으니까요. 그때 제가 난생 처음 어른들 말씀을 거역하고 이화대학에 입학했지요. 맏딸인 저로 인해 엄격한 안동 유교집안의 금기가 깨진 거죠.” 평소 부모님 뜻을 거역해 본 적이 없는 믿음직한 맏딸. 그러나 동생들을 위해서라도 학업은 포기할 수 없었다. 큰 언니의 용기 있는 반란(?) 덕분에 둘째 홍애수(약학 60졸), 셋째 홍애영(영문 61졸), 넷째 홍승진(도서관 65졸) 씨까지 네 자매가 모두 이화 동문 타이틀을 달게 됐다. 동 생들은 언니 덕분에 이화대학에서 공부하고 인생을 잘 살 수 있었다며 지금도 감사해 한단다.
드러나지 않게 베푸는 큰 사랑
학업에 대한 열정이 누구보다 높았지만 4학년 말에 집안의 권유로 일찍 결혼하게 됐다. 당시는 금혼학칙이 엄격한 때라 주변에 알리지도 않고 조용히 해야 했다고. “친구들은 저의 결혼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모두가 모른 척 해주었어요. 제가 무사히 이화 졸업장을 딸 수 있었던 데는 친구들의 도움이 제일 커요”라며 웃는다.
홍 동문은 둘째 며느리였지만 서울에서 시부모님과 친지들 모시며 큰집 살림을 도맡아야 했다. 가족들의 화목과 행복을 위해 온전히 ‘나’를 내려놓아야 했던 시간이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이 개성 있게 사는 걸 보면 멋있어 보이고 부럽기도 해요. 하지만 나와 가정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하라면 저는 또다시 가정을 선택할 것 같아요. 가족과 주변을 보듬으며 살아온 것이 제 인생의 가장 큰 보람이거든요.” 보이지 않는 곳에서 행복을 가꾸는 사람, 드러나지 않게 베푸는 사람. 홍승해 동문은 그래서 아름답다.
글_김효정